프랑스 미시시피 거품 사건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프랑스 미시시피 거품 사건

by 유토피아 공식 계정 2021. 12. 9.

 안녕하세요 크라운 입니다. 과거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시시피 거품 사건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남해 거품 사건, 네덜란드 튤립 투기 파동과 더불어 고전 경제의 거품 경제 입니다.

 

 이 사건은 18세기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과거 경제 사건이 늘 그렇듯이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합니다. 18세기 프랑스는 빚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루이 14세가 막대한 예산을 써서 베르사유 궁전을 쓰는가 하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정부의 채무는 당시 30억 리브르에 달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정부의 연간 재정 수입은 1억 4500만 리브리인 것을 보면 정말로 처참했습니다.

 

 이후 루이 14세가 죽고 루이 15세가 왕위에 올랐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13세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국가를 다스릴 수 없었기에 오를레앙 공 필리프 2세가 섭정을 하게 됩니다. 그는 막대하게 쌓여있는 국가 빚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마침 그 앞에 나타난 사람이 존 로 입니다.

 

 스코틀랜드 출신 존 로는 금속화폐 대신 지폐를 발행하자는 제안을 하게됩니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했던 필리프 2세는 로의 제안을 수락하게 됩니다. 그 때 설립된 것이 프랑크 최초의 은행 방크 제네랄 프리베 입니다. 그리고 지폐를 만들어 공급하는 것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공로로 존로는 프랑스 재무총감 자리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존로는 방크 제네랄 프리베의 성공 이후 정부의 막대한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미시시피 회사의 경영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름을 서방회사로 바꿉니다. 존로의 계획은 미국 중부의 루이지애나 식민지에 회사를 세우고 미시시피 강 유역을 포함 프랑스 식민지의 무역이었습니다.

 

 존로는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일은 막힘없이 진행됐고 프랑스 정부는 북미와 서인도제도의 무역독점권, 담배독점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회사, 다른 프랑스 회사, 인도회사들과 합병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미시시피는 당시 '루이 왕의 땅'이라는 '루이지앵'이었습니다. 그러다 루이지애나 구입 이후 '루이지애나'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정부에서 믿어주는 사람의 회사였기 때문에 주가는 날로 올라갔습니다. 1718년 300리브로 시작한 회사 주가는 1년만에 1만 5천리브르까지 올라갔습니다. 당시 미시시피 회사의 주는 50만주였는데 시총이 무려 75억 리브르인 것 입니다. 주변에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 때 백만장자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섭정을 하던 필리프 2세는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통화량을 증가하게 했습니다. 시중에 돈이 풀리면 누구나 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돈의 가치가 하락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킵니다. 당시 프랑스의 빵과 우유값이 기본 6배는 올랐으며 의복은 3배나 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화폐를 금과 은으로 교환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교환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많다보니 은행의 금고가 순식간에 바닥이 났고 존로의 회사의 주가는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1만 5천 리브르에서 500리브르까지 붕괴된 것 입니다.

 

 화폐 가치는 더더욱 하락했고 인플레이션 계속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필리프 2세는 존로를 해임시켰고 모든 사건의 원인을 존로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존로는 외국인이었기에 그 누구도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존로는 해외로 도망쳤고 여기저기 다니다 결국 베네치아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네덜란드 튤립 파동, 남해 거품 사건이 나라 경제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던 반면 이번 사건은 프랑스 왕국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화폐 가치는 하락했으며 인플레이션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프랑스는 계속 재정난을 겪어고 서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갔습니다.

 

 여러 재무총감들이 프랑스의 재정난을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세금제도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귀족들에 의해 번번히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계급간의 격차가 심해졌고 이 때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집니다.

 

 이 사건 이후 프랑스에는 은행임에도 '방크'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에 소시에테(회사) 크레디(신용)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강렬히 남아있습니다. 

 

 

댓글